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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칼럼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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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 때 동기로 선후배로 함께 공부할 때부터도 정말 그 둘이 결혼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 그렇게 결혼해서 네팔에 갈지는 더욱 몰랐지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함께 미국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정말 생각도 못 해 봤습니다.

      두 분이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추상적인 앎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들을 더욱 발견하게 됩니다. 몇년 전쯤 교단모임에서 한 네팔 기독교인을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근로자로 있었던 경험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 때까지 제가 알고 있던 유일한 네팔 사람이 코이랄라 목사님이셨기에, 대화 중에 ‘설마’ 하면서 코이랄라 목사님을 아는지 물어봤습니다. 놀랍게도 ‘(자기는) 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분이 코이랄라 목사님에 대해 제가 몰랐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제 귀에 꽂힌 몇개의 단어가 있었습니다. “유명한 사역자다”, “높은 신분이다”

      그 때 처음으로 네팔도 카스트 제도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코이랄라 목사님은 그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신분에 속해 있는 분이셨던 거죠. 브라만이라는 신분 중에서도 높은 신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네팔에서 카스트 신분이 높으면 어떤 대우를 받고 특권을 누리게 되는지 실제적인 예를 들려 주었습니다. 코이랄라 선교사님을 학부 때 함께 만났을 때만 해도 그런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결혼을 한 임은락 선교사님 역시 결혼하고 네팔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코이랄라 선교사님은 그 사회적인 신분과 특권을 예수님 한 분을 위해 아낌 없이 포기하신 것이죠. 그리고 그걸 자랑 삼아 이야기 하지도 않는 분이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그런 이야기도 해 주시길 부탁드렸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언젠가 두 분을 위한 기도편지에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코이랄라 선교사님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여하려고 차를 타고10시간을 찾아갔지만, 결국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가족들과 함께 아버님의 장례식에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숙소 옥상에서 영정 사진도 없이 예배를 드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함께 10시간을 달려와 예배했던 또다른 가족이 된 교회 식구 3명에 대한 감사…그 장면을 담은 한장의 사진…이 기도 편지에 담겨 있었습니다. 은락 선교사님은 코이랄라 선교사님과 그 짐을 함께 나눠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그 가난한 환경 속에서 먼지와 이질과 오랜 정전 그리고 정치적인 불안과 싸우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기를 소망하고 있으신거죠. 언제든 네팔을 떠날 수 있고, 그런 여건과 힘이 있지만, 그래도 두 분은 다시 한번 네팔을 향해 걸어가십니다. 

      두 분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또한 두 분의 삶이 우리에게도 복이되리라 믿습니다.

    최지원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