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는 장면은 복음서 네 곳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26:6-13; 마가복음14:3-9; 요한복음 12:1-11; 누가복음 7:36-38 입니다. 이 본문들이 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의견들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비교해보면, 적어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와 아주 유사한 사건 혹은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면 , 요한복음과 다른 복음서 사이에 차이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기록자의 목적과 관점의 차이로 인한 생략과 강조가 있었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깝게는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많이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간증할 일이 자주 있지만 그렇다고 간증할 때 마다 처음 부터 끝까지 있었던 일을 샅샅히 다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부분만 선별해 말하지요. 그렇다고 제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들과 다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면, 다른 복음서와 아주 유사하게 반복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말그대로 아주 유사하지만‘그럼에도 다른 사건’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정리해 보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은 한 명일 수도 있고 두 명일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은 어떨까요?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는 같은 사건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다른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다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다른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누가복음의 향유사건은 다른 복음서 향유 사건과는 다른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 저는 헌신이 가지고 있는 전염성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한 여인의 헌신을 통해서 다른 주변에 여인들도 그 헌신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여인의 헌신과 사랑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다른 여인들의 귀감이 되었을 것 분명합니다. 그래서 후에 베다니의 마리아(나사로의 누이)도 아주 비슷한 방법으로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알려지지 않은 베다니의 마리아도 똑같은 헌신과 사랑을 예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죄인이였던 한 여인이 많은 눈물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장면은 기독교인들의 마음 안에 한폭의 그림처럼 남아있는 장면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벌써 그 헌신에 전염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내 삶에서 주님을 위한 눈물과 향유를 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후에 주님 만날 때면 그 사랑하는 주님 발 앞에 엎드려서 그 발에 난 못 자국 위에 입을 맞추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눈물로도 그 발을 씻겨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땅에서 살면서 일궈낸 작은 열매들을 주님 발앞에 내려놓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제 머리에 씌워주시는 면류관이 있다면 그것도 주님 발 앞에 내려놓고 싶습니다.
지난 몇주간 헌신대에 대한 사랑의 메아리를 썼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을 헌신대라는 단어 하나로 축약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헌신대로 나아가는 우리의 마음안에 그 때 그 여인들을 마음을 담아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눈이 의식되는 것도 있겠지요. 시선의 문제일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될 것입니다.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 자랑이 되고 문화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Following the shepherd.. 최지원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