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을 회고하며..
9년 전… 우간다에 4월 2일에 도착...3일에는 인터넷으로 도착 소식 알리려고 동네 인터넷 카페에 에스더와 함께 가서 1,000 실링 내고... 한 시간이 지나도 hanmail이 열리지 않아 에스더는 울려고 하고... 4일에 학교에 처음 가서 한번 둘러보고...말도 할 수 없이... 오후에 임시로 살던 집에 와서, 어떻냐고 묻는 가족들을 피해, 정말로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엉엉 울며... 기도를 시작하면서.., 주여!!! “Building Hope Together!”(with God)을 학교 표어로 받고, “Rise up, Buzzi! United as One! For my God and my Uganda! Victory, Yah~~~!”를 시간날 때마다 교창하는 표어로 만들고...
동네 사람들에게, 선교사님들에게 무시받는 이곳...“갈릴리처럼... 거기서 뭐 선한 것이 나오느냐며 무시 받았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머무시며 가르치시고, 설교하시고, 치유하시며 천국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시자,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우리도 매일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역사하실 자리를 만들어 드리자”하고 선포하고 매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자 귀신들이 아이들에게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쫓아내고... 온 학교 공동체가 기도하며 열심히 가르치며 공부한 결과 동네에서 드물게 초교 졸업 연합고사에서 1등급을 받는 아이들도 나오고...
물론 지금도 우리 학교가 있는 가난한 동네의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일들이 많지요. 직전까지 교장&교사들이 학교 자산을 훔쳐가는 도둑넘들이고, 아이들은 화상을 입고, 상처가 나서 고름이 흐르고, 심하면 썩는 냄새가 나도 전혀 치료를 안 해주니,.. 그냥 포비돈으로 문지르고 푸시딘만 발라줘도 상처가 마르고 치유가 되는데... 고름을 짜다가 툭 튀어나와서 제 어깨에 까지 날아오고... 처음에는 신발 신은 넘들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 아침엔 신발없는 아이가 단 두 명이네요! 옛날에는 전기는 온 동네에 없었고, 우간다를 방문했던 호빵맨이 과거 찬양 전도시에 사용하던 것보다 용량이 두 배나 큰 발전기를 구입하도록 후원해줘서 매일 드리는 예배시간에 기타 연결하는 소형 스피커, 주일에는 600와트 앰프와 빔 프로젝터를 한번에 쓰던 시절...
아...그때는 수도가 없으니 빗물을 열심히 받고... 건기에 빗물도 없으면 4-7학년이 아침마다 교대로 20분 가량 떨어진 곳의, 깊은 정글 같은 곳에 영국 사람들이 식민지 시대에 파 놓은 샘물로 줄서서 가서 물 떠오고... 지금은 용인의 한 교회 장로님의 후원으로 지금은 학교에 수돗물도 있고, 6,7학년 교실과 교무실, 제 사무실, 교회에는 전기도 있지요(늘 처럼 전기가 나가면 자랑스럽게‘매일’가지고 다니는 발전기 돌리면서, 아그들에게“우간다는 우리 우간다인의 손으로, 네 손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악도 쓰고...).
영적으로도 우리 학교가 있는 나물란다(Namulanda의 의미는... 오시면 ‘남을란다’ 하며 남아야 하는 곳... 잘 못하면 나무람을 받는 곳)이라는 이름이 이 동네가 섬기던 귀신의 이름... 영적으로 우리 학교가 이곳에 있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요. 학교에 왔던 단기팀원 중에 한명이 귀신들리고, 그 친구가 해방받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귀신들이 우리 학생들에게 예배, 기도시간, 나무 밑에서, 교실에서 모습을 드러내고는... 그 날이 귀신의 제삿날이 되지요. 그래서 신학교가 아니지만 그때부터 매일 예배를 드립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 학교에 임하셔서 역사하실 자리를 매일 만들어 드리는 것이지요.
6시 10분에 집을 나서서 7시 15분에 교사 기도회를 하고 나면 아침마다 각 교실에서 짹짹짹짹 힘차게 우는 참새처럼 올리는 경배와 찬양과 기도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점심 식사 직전인 12:20분에 다윗처럼 기타를 치며 다같이 아주 힘찬 경배와 찬양을 올려 드리고 소망의 말씀을 선포하고, 학교에서 저를 보신 어느 분 말대로 얼굴이 하얘질 정도로 진이 빠진 상태로 집에 와서, 교사들이 낸 숙제를 검사해서 복사하면 하루의 일과가 끝나지요 예배를 드립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래도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정말로 하나님의 큰 은혜와 여러분들의 기도로, 아프리카를 계속 아프게 하는 고질적인 말라리아 한번 걸리지 않고, 9년째가 되어갑니다. 물론 우리 자녀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도 감사하지요. (작년인가? 방학에 집에 온 아그들과 저녁 밥먹다가 아마 그날도 전기가 나갔던 것 같네요. 촛불 켜고 단열이 녀석이 “우리 중에 누구도 지금까지 아무도 말라리아 한번도 안 걸렸다! 감사하지 않아?”하는 바람에 갑자기 다 숙연!). 4년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간 에스더...하여간 좋으신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역사하시고,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동안 감사하게,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 가운데 행복한 경배와 찬양과 함성의 소리를 들으며, 기쁘게...때로는 좌절감을 느끼며, 또한 그것을 은혜로 극복하며 지내는 동안에도 마음에 한편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과 저를 훈련시켜 오신 부분인 제자 훈련과 경배와 찬양에 대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학교 자체의 상황과, 저와 관련된 세 개의 학교들의 학사 일정이 서로 정반대로 달라서 아프리카는 커녕, 우간다의 다른 지역은 커녕 사파리는 커녕 그냥 거의 학교와 집이 있는 근처인 캄팔라를 거의 떠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또한 매일 그냥 퍼주어야만 하는 학교라는 특성상, 케냐를 가도 토요일 밤 12시에라도 돌아와야 했고, 그러는 동안에 영적으로 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안식년)도 갖지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가 떡을 달라 할 때 돌을 주시거나, 생선을 달라고 할 때 뱀을 주시지 않으심을 믿으면서, 어디서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과 훈련시켜 오신 방향으로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집중적으로 간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예배와 훈련 사역, 전도와 섬김의 사역...의 열매를 보기 원합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8월부터는 신학교에 강의도 나가고, 학교로부터 한발자국 물러서서 교장에게 사역을 더 맡기려고 합니다. (결심은 그런데...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안식년 대신에, 온 가족이 이번 여름 7-8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반가운 얼굴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모두들 평강과 성령 충만함을 누리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