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신학교 학부 2학년 때 함께 중보기도 모임을 하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어느 수련회에 참석 했습니다. 제가 이제껏 경험해 본 그 어느 수련회 보다도 은혜가 많았던 수련회였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우리들 안에 일하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잠시 자유 시간이 있을 때면 함께 갔던 친구들이 모여서 받은 은혜들을 나누곤 했습니다. 삼일 째쯤 되었을까요? 제 친구들이 하나 둘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소명을 주셨다고 말하는 겁니다. 근데 저는요? 저는 구체적인 소명에 관해서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 저만 신학생이었는데도 말이죠. 제게도 더 구체적인 소명이 필요했습니다.
하루하루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저에게는 정작 갈 길을 안보여 주셨던 걸까요? 답답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수련회 어느 날 아침에 성경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으로 유명한 본문이지요. 그런데 그날 저에게는 평소에 관심 갖지 않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본문이 제 마음에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걸으면서 그의 미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하십니다. 그 때 베드로가 고개를 돌려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미래는 어떠할까 궁금한 마음이 들어 예수님께 물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본문을 묵상할 때 바로 ‘사랑하시는 그 제자’의 마음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궁금하나 두려움 없이, 겸손히 주님을 신뢰하였을 그 마음.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끄실 때, 어떤 사람은 비전을 먼저 주고 이끌어 가십니다. 하지만 다른 경우엔 이끌어 가시면서 비전을 만들어 가시기도 합니다. 저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구체적인 비전 없이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도리어 제 마음에 한가지 명확한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삶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성경이 말씀하는 우리 모두의 부르심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것이 제 삶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에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제 마음에 그 질문이 다시 물어졌습니다. “지원아, 너 ‘정말로’ 예수님을 닮고 싶니?” 그 의문 앞에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이 정말 나의 깊은 갈망인가? 저는 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 대답할 수 가 없었습니다. 아니더라구요. 저에게는 아직 예수님 말고도 원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또 다시 갈 길을 물어야 하는 제 상황에서 주님은 저에게 되물으십니다. “지원아, 너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니? 정말 나를 따르고 싶니?”
궁극적인 소명 앞에서 그 어떤 소명도 소명이라 할 수 없기에.. 예수님을 바라는 삶보다 더한 갈망은 없어야 하기에.. 다른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보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의 가장 간절한 소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지원 전도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