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기록된 성령의 열매, 아홉 개 단어는 한 사람의 영혼이 성령님의 지배를 받을 때 그 개인의 내적 또는 외적으로 “성령님이 나를 다스려주시는구나”를 경험하는 체험이기도 하지만, 사실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성령의 열매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관계의 열매라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 관계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아홉 개 열매 중에 마지막 단어로 기록된 “절제(Self Control/ Temperance)”는 섬김의 자세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성령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절제는 무엇을 “안 하는 것”만 아니라 할 것을 “할 줄 아는 것”도 포함합니다. 왜냐하면 해야 할 것을 하면 안 해야 할 것을 저절로 안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질에 대한 절제의 감각도 가난하기 때문에 인색한 사람이 있고, 가난하기 때문에 더 풍성한 사람이 있습니다. 많이 소유했음에도 움켜 쥐고 인색한 삶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넉넉하지도 않은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풍성한 나눔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성도들의 삶에 항상 넉넉한 소유를 가지되, 나눔에 있어서는 더 큰 넉넉함으로 하나님의 손길로 사용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절제라는 성령의 열매의 가시적 나타남에 있어서, 숫자로 표현되는 재산의 크기와, 성령의 열매로 표현되는 풍성함과는 아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목회 현장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형편”에 따라 좌우되기 보다 의미와 목적을 결정하는 “영성(성령의 다스림)”에 따라 피곤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합니다. 고생을 피해 도망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정교회의 영성은 고생을 즐기는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만 경험적으로 간증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나타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평신도 세미나나 목회자 세미나를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도 늘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절제의 열매들을 보아 왔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하시는 분들에게 민박을 제공하고 참석자들이 참관하게 될 목장을 배정하다 보면 늘 복잡한 상황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복잡함이 오히려 절제의 실력을 다듬고, 절제하는 영적 성숙함을 가늠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난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고 방송마다, 사람마다, 전염병 피로감(Pandemic fatigue)이란 말을 하며, 안 하고 못 하고 도망가야 할 기회를 찾는 핑계를 댈 때, 가정교회 공동체들은 오히려 고난의 시간을 도전의 기회로 삼고 믿음의 발돋음을 시도하는 기간으로 삼는 절제의 열매를 보았기에 감사가 넘쳤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관점에서 큰 그림도 가져야 하겠지만, 심판으로 달려가는 세상 흐름 가운데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사역에 지장 받지 않는 넉넉함을 표현할 줄 아는 절제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목장 식구와 VIP를 잘 섬기겠다고 형편과 처지를 바꾸어 가며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연습이야말로 믿음으로만 설명이 되는 절제의 열매들입니다. 신비한 것은 상황에 따라 살기보다, 상황을 극복하고 한걸음 더 내 딛는 믿음의 발걸음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삶의 현장에 있더라도 신앙의 발돋음을 내 딛는 일에 지혜로운 절제를 잘 적용하여, 할 것은 담대하게, 안 할 것은 단호하게 결정하여 삶 가운데 풍성한 절제를 즐기는 가정교회 공동체가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