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그렇게 하여라.
(전도서 12:1-2)
한국이나 미국의 기독교는 ‘다음세대’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안정적이고 풍요롭고 평화롭습니다. 그 세상은 그들에게 핑크빛 약속하고, 그들은 그 약속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만들어낸 지옥’을 경험했던 ‘이전세대’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이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권이 세워지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가정과 사회가 변화되는 것을 경험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직업관이 바뀌고 깨끗한 물질의 복이 부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절박했고, 하나님은 그들 앞에 기적과 은혜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주셨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죄와 가난과 차별과 질병에서 그들을 건져내 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세대에게 ‘복음’이었던 것이 이제 다음세대에게는 더 이상 ‘복된 소식’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전세대가 ‘복음을 통해 회복한 복들’이 다음세대에게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닉합니다. 세대를 거치며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사사기의 이야기가 우리세대도 적용이 되는 것 같아 가슴 아픕니다.
우리의 다음세대는 우리가 누리고 있고 사랑하는 선한 것들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합니다. 미국에 살다보면, 기독교 신앙은 없는데 왠만한 기독교인들 보다 더욱 기독교인다운 사람들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들의 인격과 가치관 그리고 그 여유로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모르기에, 그들이 사랑하는 이 세상의 풍요로움이 풍요의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임을 모릅니다. 그들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삶과 생명이 그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모릅니다. 그들은 사랑과 기쁨과 쾌락까지도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야기해 주셨던, 아버지의 재산만을 원하고 아버지를 싫어했던 탕자처럼,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좋아하는데, 정작 그 하나님은 싫어합니다. 그들은 Almighty Luck을 믿습니다. 이 세상은 그 알 수 없는 Luck에 의해 생겨 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철저한 믿음임에도 그들은 그것을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Almighty Luck을 믿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인격적인 하나님 보다 더 편하고 자기가 원하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에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적 믿음이 창조의 경이로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려 버립니다. (To be continued…)
Following the shepherd…
최지원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