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8:4 “슬기로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청년들이 명절에 가족모임에 참여하기 싫어 하는 이유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청년들이 가족 모임에서 경험했던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이 오히려 청년들에게는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관심이라는 명목아래 비교하고, 평가하고, 지적하고, 부담주는 말들이 오고 가는 것이죠. 어른들 입장에서는 걱정이고 관심이고 어쩌면 사랑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없으니 문제인 것인 것 같습니다. 그저 사랑을 못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관심이 상처로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교회는 가족이고,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위에서 나눈 명절 스트레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지혜로운 말과 지혜로운 행동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랑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고, 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말을 해야 할 시점과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 보고, 그러면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혜가 사랑을 빛나게 합니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려는 대상은 상처투성이인 연약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늘 왜곡하는 안경을 끼고 나의 말과 행동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의 문제라고만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픈 환자를 대할 때, 그 아픈 부위를 치료하고 소독하려며, 그 상처 부위를 더욱 조심히 다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맞겠지요.
물론 사랑을 받는 사람의 지혜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좀 투박한 사랑을 받게 될 때, 그 투박함 속에 담겨진 사랑을 볼 수 있는 지혜. 투박한 포장지를 뜯어 버리고, 그 안에 담긴 소중한 것은 챙길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겠지요. 상처의 안경을 내려놓고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겠지요.
우리는 ‘잘 사랑하는 법’을 평생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누구 하나 완벽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또 모든 사람은 다 다릅니다. 모두 한걸음씩 배우며 걸어가는 거겠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사랑하기 위해’ 의식하고 노력하는 것은 참 중요할 것 같습니다.
최지원 목사 드림